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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기념관에서 생명의 삶을 시로 승화한 청마 유치환의 흔적을 만납니다.

온라인 명예기자단 조윤희


 

 

방하마을 보호수

-소재지: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709

-수종: 팽나무

-나무 나이: 350년(지정 연도: 1997년)

-나무 높이: 18m / 나무 둘레: 3.5m

 


 

누군가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은 가을의 어느 날.

밀려드는 감성을 따라 떠난 문학 기행의 목적지인 청마기념관이 있는 거제 방하마을을 찾았네요.

 


 

이 마을에서 태어난 유치환 선생의 흔적이 나무에게서 찾을 수 있을 턱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무 주위를 맴돌며 350년 이상이나 된 수령을 가진 팽나무의 아름다운 자태를 한참 바라보았네요.

 


 

거제 역사의 발원지 둔덕면 방하 마을 표지석에 마을에 대한 안내문이 있더군요.

 

'산방산과 산방 마을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방하 마을이라 했다.

산방 마을과 방하 마을은 예전에는 한마을로 산방은 웃물이라 했고 방하는 아랫물이라 했다.'

 


 

국어책에서나 봤던 청마 유치환 선생이 태어난 곳인 방하 마을에는 유치환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답니다.

 


 

청마생가와 기념관이 있는 방하 마을은 남파랑길 거제 27코스, 고려촌문화체험길/거제 섬&섬길 3코스가 시작되는 포인트가 바로 방하 마을이랍니다.

 

청마기념관

-소재지: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2길 6

             (지번. 방하리 505-1)

-운영 시간: 화 ~ 주일 09:00 ~ 18:00

-휴관: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매주 월요일은 정기  휴무

-대표전화: 055-635-8340

 


 

청마기념관의 전경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분단, 4.09 등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시인의 부르짖음은 뜨거웠었겠지요. 그런 흔적을 담아낸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거제가 낳은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시인이자 교육자였던 유치환.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우리나라 역사에 어떤 가교 역할을 했을까요?

그의 삶은 과연 귀감이 되는 삶이었을까요?

 


 

청마 유치환 시인의 삶과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운영되고 있는 기념관은 2000년 5월 20일에 준공하여 2008년 1월에 개관했고 1층 입구 좌측에 청마 유치환 시인의 청동상이 방문객들을 맞아주고 있답니다.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유치환의 일생을 들여다 보기에는 부족함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문화해설사 선생님과 함께 1층에 있는 제1전시실부터 둘러보았네요.

 


 

유치환 시인의 여러 작품이 전시된 1층에서 문화해설사 선생님의 열띤 해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문학 동인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합니다.

 


 

거제 둔덕에서 태어나 짧은 유년 시절을 보내고 그 이후로 통영, 부산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면서 오랜 시간을 교단에서 활동을 하셨다지요.

 


 

유치환 선생의 시가 적힌 그림엽서가  1층 전시실 바깥 벽면에 붙여져 있더라고요. 아무렇지 않게 꾸밈없이 붙여놓은 것처럼 보였지만 엽서마다 선생님의 시가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았답니다.

 


 

시도 많이 지었지만 선생의 작사한 교가들이 많아서 액자로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시 활동과 작사를 많이 하신 유치환 선생의 삶은 선생이 태어난 곳에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 지은 기념관 옆에 있는 생가도 둘러보러 갔네요.

 

 

동랑 청마 생가


 

유치환 선생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휴대폰이 없던 시기에 소식을 전하는 매체가 편지가 대세였다고는 하지만 어마어마하게 교류했던 사실을 남겨놓은 편지를 보면서 그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기념관 바로 옆에 생가를 복원해 언제든지 둘러볼 수 있게 했더라고요.

마당 오른쪽에 유치환 약력과 우물, 농기구, 댓돌 위 고무신, 장독대 등 향수를 자극하면서 유치환 선생의 형인 동랑 유치진 선생과의 시간을 엿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밀양 박씨 박순석의 딸 사이에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지만 여기에서 오래 살지는 않았고 2살 때 충무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지요.

 


 

1967년 부산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저녁에 귀가 중 부산 봉생병원 앞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많은 문학인들과 팬들이 많이 슬퍼하고 애도했다고 하지요.

 


 

빛바랜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던 생가를 뒤로하고 귀갓길에 오르면서 유치환 선생의 동상 앞에 서서 그의 시를 떠올려 보았습니다. 여고 시절로 돌아간 채로 말이지요.

 

 

깃발/유치환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고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울 안 그는

 


 

 

청마기념관에서 생명의 삶을 시로 승화한 청마 유치환의 흔적을 만납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청마기념관에서 생명의 삶을 시로 승화한 청마 유치환의 흔적을 만납니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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